목회자, 교사, 그리고 부모에게 당부드립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자신이 먼저 보내었던 첫번째 편지,
누가복음을 상기 시켜주는 것으로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썼던 누가복음의 핵심을 (행1:2)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기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쓴 누가복음은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주님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누가가 예수님의 삶을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는 구절로 설명하면서 '행하시며'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행하셨던 것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람을 가르치려 하시기 전에 먼저 당신께서 행하셔야 될 것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더 없이 소중한 것은 예수님의 그 가르치심이 그보다 선행되었던 예수님의 행하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선행된 행하심에 근거를 두지 않았더라면 그분의 가르치심은 이미 이천년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행함이 결여된 가르침은 공허한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가르치려 하시기 전에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비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을 먼저 하셨습니다.
인산 세상에서 죄로 더럽혀진 인간들과 부대끼며 그 죄인된 인간의 친구로 살아가는 삶을 먼저 사셨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받아야 할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세례자 요한의 앞에 친히 무릎을 꿇으시고 세례를 먼저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기 전에 당신께서 행하셔야 할 것을 철저하게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와 같은 삶은 사람과 세상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교회를 가르키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가르칠 교(敎)와 모일 회(會)자를 써서 교회(敎會) 즉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교회라는 의미로) 번역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천년 교회 역사상 유례없이 성경공부에 열심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밝혀주는 사도행전의 첫 머리인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가르친다는 동사 이전에 행하셨다는 동사를 가장 먼저 사용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가르치려하기전에 먼저 주님을 쫒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만 합니다.
그때에만 교회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세상에 증명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면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삶이 결여된 성경공부는 공허한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고 크리스천에게 그보다 더 백해무익한 인생 낭비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