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품고 생명 살리는 일에 (창세기 46:28-34) - 박정제 목사
진실을 품고 생명 살리는 일에 (창세기 46:28-34)
‘ ...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어진 내 삶의 시간 속에 주의 뜻 알게 하소서. 하루를 살아도 기쁨으로 사니 예수 늘 함께하시네...’
오늘 아침 이 찬양의 가사가 매우 큰 울림으로 들려진다. 어떤 삶의 자리라도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에 하루를 살아도 기쁨으로 산다는 고백의 찬양이 한 편의 설교와 같다. 아멘.
나의 아침 시간의 사치를 누리는 날이며,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한 주간을 돌아보니 감사한 것밖에 없다. 새로운 앱 개발을 위한 계약이 성사되고, 하반기 사역이 은혜롭게 시작하고, 아내가 한달 만에 손목 기브스를 풀고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함께해 주시는 소중한 후원자님들과 이사님들 그리고 수고하는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기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야곱과 요셉이 만나는 과정, 그리고 애굽 고센 땅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29-30절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 맞춰 안고 얼마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17세에 이별하여 30살에 총리가 되고 7년의 풍년을 지나고 2년 흉년을 만나고 있을 무렵 만났으니 이들의 만남이 무려 22년만이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고 애굽이란 나라의 총리가 되어 왕이 내어준 수레를 타고 야곱을 맞으러 가니 야곱이 그 모습을 보고 이젠 내가 죽어도 좋다고 하며 울고 있다.
91세의 나이에 낳은 아들,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기에 더 사랑스럽고 더 소중히 여기는 아들이었기에 이 부자간의 상봉은 상상 이상의 감격이 있는 만남이었을 것이다. 이런 위대한 만남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세상은 끝이라 말하지만 주님은 이런 새로움을 만드시는 분이시기에 오늘도 기쁨으로 이날을 살아갈 수 있다. 할렐루야~
그렇게 기쁨의 상봉을 이룬 요셉은 야곱이 바로를 만나야 한다고 하며 이렇게 대답하라고 한다. 33-34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바로의 이 질문은 탐문하기 위함이 아니라 요셉의 가족이기에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당연한 대답 그들이 늘 해 왔던 일을 답하라고 가르치며 그래야 고센 땅에 살게 된다고 한다.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왜 요셉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대답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을까? 형제들이 애굽의 화려함에 빠져 또 총리인 아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다른 답을 할까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무런 배경없이 총리로 애굽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겨웠을까? 온갖 허물을 잡아 그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정치는 어느 사회나 똑같은 것이다. 권력을 쥐려는 욕망은 상상 이상의 행동을 만들어 냄을 요셉은 총리생활 9년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요셉의 생각을 통해 이스라엘로 신앙에 구별된 삶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이며, 민족으로 커나갈 최적의 시간을 그들에게 보장해 주신 것이다.
<땅의 언덕>이란 뜻을 가진 고센은 애굽의 나일강 삼각주 남동 지역으로 목축에 알맞은 땅이다. 총리로 요셉은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이곳을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 지역으로 선정해서 오게 한 것이다.
생각해 보자. 형제 중 하나가 총리가 되어 실권을 쥐고 있다고 하면 그 형제들과 그 자손들이 그 영향권안에서 왕궁 근처로 와서 뭔가 자리를 잡으려 하지 않겠는가? 이런 청탁을 사전에 요셉은 차단시킨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요셉의 처신이며, 이것은 더 나아가 애굽의 문화에 동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신앙을 구별되게 지킬 수 있는 소중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굽 사람들은 왜 목축을 가증히 여겼을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목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애굽이 침공당하여 아픔을 겪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애굽은 짐승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데 목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짐승을 죽여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구별된 삶을 살도록 섭리하셨다는 것이다. 진실로 기가 막히신 하나님의 이끄심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야곱의 힘으론 죽은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 자신과 다른 모든 자녀들을 살리며 새로운 시작을 이루는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고 계심을 묵상하게 된다. 22년이란 시간 슬픔과 아픔으로 살아온 야곱의 생애는 사실과 다른 요셉을 총리로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본다.
오늘 나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 하루하루의 삶이 참 힘겨운 시간들이다. 사역해야 하고, 집에 와서 아내를 돌봐야 하고, 또 내려가는 자로서 나서서는 안 되고 세워주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행동해야 하는 내 모습들이 참 답답하고 힘겹다.
생각해 보면 야곱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팔아버린 아들들과 오늘도 좋은 관계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신의 아픔이 많지만, 그것을 빌미로 다른 아들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또 요셉의 삶을 묵상해 보면 22년이란 오랜 세월 아버지와 형제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왕의 허락속에 열려진 만남을 가지며 자신의 처소와 먼 곳에 아버지와 형제들의 삶의 자리를 마련하는 지혜를 묵상한다.
진정한 사랑과 지혜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된다. 이런 요셉의 지혜로운 처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나름 오랜기간, 즉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오기까지 안전한 울타리로 보호받으며 한 민족으로 성장할 기초를 닦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배려와 요셉의 지혜로움을 묵상한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요셉의 말을 주목하자.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하라고 한 것은 첫 번째 진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굽사람들과 경쟁하지 않는 블루오션 직업이다. 정치인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란 것이다.
예전 나의 부모님 세대는 농사를 지으며 자식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내가 너 농사짓게 하려고 공부시킨 줄 아느냐고 화를 내었다. 그들은 농사를 짓는 행복을 누리지 못했고 고생하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애굽이란 나라에서 목축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일이리라. 그러나 요셉은 형제들을 고생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 실익은 있으되 거룩을 지킬 수 있고, 정치의 희생양으로 고통하지 않을 최적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모든 것은 진실을 기초로 해야 한다. 아울러 블루오션의 자리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라마나욧선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렇게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라는 전혀 생각도 못한 시간,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며 그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는 때에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하신다.
그렇다. 진실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의 사명이 부여된 자리다. 그러나 이것이 경쟁의 자리가 아니라 꼭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잘 시작하지 못하는 그런 자리를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라마나욧은 경쟁하는 자리라면 피해야 한다. 우린 경쟁하기 위해 보냄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살리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주님, 라마나욧이 앞으로 있어야 할 자리가 진정 진실을 담고 살리기 위한 자리에 서게 하소서. 저에게 요셉에게 허락한 지혜를 주사 경쟁하는 모습이 아니라 살리는 일에 생명을 걸고 진실을 품고 나가는 종이 되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