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 이장우 목사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면서 행하는 행동양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육신의 마음과 내 생각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육체의 본능과 욕심, 자기 생각과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어주시는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하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장애인이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한 행동은 인간적인 계산과 판단에서 나온 행동에서 나온 것일까요? 아니면 주님이 부어주시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까요?
성령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여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증인이 된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구걸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한 행동은 자기의 생각이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순간 베드로와 요한 안에 계신 주님이 그렇게 행할 마음을 부어주셨고, 생각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이 부어주신 마음에 순종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내가 했으면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주님이 하라고 해서 한 것은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능력이나 생각으로 해서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면 베드로 자신을 자랑하고 높이고 베드로가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어주신 마음에 순종해서 행하여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면 베드로는 하나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이며 주님이 행하신 일이기에 주님이 영광과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이며 예수님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하고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과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에 그렇게 행할 마음을 부어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용기와 담대함을 주셨기에 그 주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한 것뿐이며 주님이 행하셨기에 주님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생각이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욕심에서 나오는 생각, 육신의 계산적인 마음,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달려져야 합니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넘어와서 복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머리와 지식의 신앙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마음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부어주시는 마음으로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내 심령을 채우며 어떻게 행하면 좋을지 주님께 물어보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주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묻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글, 이장우 목사
성남열방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