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라 주님을 (고린도전서 14:1-4) - 박정제 목사
내가 아니라 주님을 (고린도전서 14:1-4)
요즘은 설교하고 나서 뭔가 모르는 아쉬움을 자주 느낀다. 처음 주님의 마음을 받아 설교를 준비하여 전하였는데 주님의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겸손히 나를 돌아본다. 주님, 이 종이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하시고 순종케 하소서.
매주 다른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로 쉽지 않은 부담과 소통없이 전해야 하는 한계가 있기에 그저 주님의 마음을 느끼려고 더 노력할 뿐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요즘 두드러지는 현상은 나에게 일어난 일을 전하는 일에 주님이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는 마음이다.
이제까지 복음은 절대로 객관적으로 전해질 수 없기에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실패하며 일어난 이야기를 통해 주님을 전하는 목사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근자에 이 부분에 뭔가 모르는 부담과 아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혹시 이것이 진실함이 아니라 자랑이 되는 것은 아닐까? 주님 ~ 이 종으로 깨닫게 하시고 자랑할 것 없는 제가 엉뚱한 자랑으로 주님을 가리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이제 설 명절이 시작된 오늘 주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방언과 예언의 차이를 구별하며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전하고 있다. 1-3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여러분의 생명이 사랑에 달려 있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사랑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선물을 열심히 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리를 힘써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이 자기만 아는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은 알아들으시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만 사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상의 언어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도 그 진리에 참여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자라고 튼튼해져서, 여러분과 함께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누구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 은사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은사가 경쟁이 되고 그 은사에 의해 교회가 흔들리는 현장에서 다양한 은사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야 하고 목표가 어디인지를 가르치며 첫 번째로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고 있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 한다. 즉 방언하면 그것은 하나님과만 사귐을 가지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예언 즉 일상의 언어로 진리를 선포하면 다른 사람도 진리에 참여하게 하고 자라게 하여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한다.
하나님은 한쪽 편을 드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사람은 조화로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는 것이다. 방언을 통해 하나님과의 사귐을 깊이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방언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자랑하고 경쟁하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깊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큰 울림과 찌름을 준다. 그렇다.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일에 대해 진리를 진실하게 전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드러내기 위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간증은 주님을 드러내기 위함이어야 하는데 주님보다 내가 드러나는 일에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주님, 이 종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어찌하든지 오직 주님만 드러나게 하는 종 되게 하소서.
바울은 그러면서 일상의 언어로 진리를 전하는 일은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진리에 참여하게 하고, 자라게 하며,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란 것이다. 아멘. 아멘. 아멘.
예언을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일상의 언어로 진리를 전하는 것이란 번역이 매우 놀랍다. 예언하기를 힘쓰라. 예언하기를 열망하라는 바울의 말씀을 유진 피터슨 목사의 관점으로 보면 일상의 언어로 세상이 들을 수 있게 진리를 전할 수 있기를 열망하라는 말이다.
설교와 간증 및 복음 전파는 바로 일상의 언어로 세상이 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자리를 열망하며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바울은 말씀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이렇게 구분한다.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한다. ‘자기만 아는 <기도의 언어>로 기도하는 사람은 거기서 많은 것을 얻겠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선포하는 사람은 온 교회를 성숙시키고 튼튼하게 합니다.’
여기서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방언은 작은 것이고 예언은 크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선한 것이며, 좋은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최고다.
다만 은사의 방향성에서 방언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사귐속에 사용되어야 하고, 예언 즉 일상의 언어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사귐에 필요한 것이란 말씀이다.
지금 고린도 교회안에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방언 받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 방향성을 따라 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은사는 공해가 될 수 있다.
물이 좋은 것이지만 물만 먹고 살 수 없듯이 모든 것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말이다.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은사가 가지는 방향성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임을 깊이 묵상한다.
돌아보면 나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사람이다. 또한 나에게 주신 은사에만 너무 집중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교만함이 있는 고린도 교회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이런 나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주님, 맞습니다. 이 종이 바로 고린도 교회와 같습니다. 참으로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자로 복음을 듣게 하시고 너무 어리석어 큰 은사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로 자신을 자랑하며 살아온 참으로 어리석은 자임을 자백합니다. 이 종으로 이제는 성숙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존중하며 내가 아니라 주님을 일상의 언어로 전하는 일에 힘쓰는 종으로 서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