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탈진 중" 목회자 탈진 예방법
새벽기도 인도와 잦은 설교·각종 심방 등으로 ‘과로’ 일쑤
지난달 경기도의 한 교회 목사가 사임했다. 사임 이유 중 하나는 탈진이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이 모든 일들을 의욕적으로, 지속적으로 잘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며 “집안에 모든 전등이 꺼지고 가족들이 다 들어가면 깜깜한 거실에 나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미국 시애틀 퀘스트교회 유진 초 목사도 최근 교회를 사임했다. 한인 2세로 다인종 교회를 담임했던 그는 탈진이 사임의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몸이 힘들었다”고 미국 기독교 월간 크리스채너티투데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18년 전 교회를 설립해 3년마다 3개월의 안식 기간을 가졌던 그였다.
탈진으로 인한 목회자들의 사임 소식이 들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이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매일 새벽기도 인도와 잦은 설교, 각종 심방과 경조사 챙기기 등으로 쉴 틈이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작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는 한국사회와는 딴판이다. 더구나 목회자들은 교회 부흥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각종 이단 세력 등 외부의 도전에도 맞서야 한다. 목회자에 대한 불신풍조와 교회 내부 갈등도 목사들의 힘을 빼는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진이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까. 상담 전문가들이 권하는 예방법은 주로 네 가지다. 첫째, 일정 기간 목회사역을 벗어나 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쉼에는 여행을 비롯해 기도와 묵상에 전념할 수 있는 피정의 시간이 포함된다. 둘째, 정기적으로 목회 상담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국교회 구조상 목회자 스스로 탈진을 방지하기는 어렵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 셋째,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교인들이 이 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슈퍼맨이 아니다. 넷째, 목회자와 그의 가정의 건강을 위해 교회와 교인들의 배려가 요구된다.
연세대 권수영(신과대) 교수는 9일 “근본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타 전문가에 비해 쉼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 탈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가장 빠른 예방책은 교회가 나서서 담임목사에게 1년에 최소 4주 이상 무조건 안식과 충전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심리적 부담감도 크다. 완벽주의와 좋은 목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며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받아들이고 모든 교인을 기쁘게 해주려는 강박을 버리면 쉽게 탈진에 빠지는 일은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라이프웨이기독교연구소장인 톰 레이너 박사는 최근 “많은 목회자들이 ‘아니요’라는 말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권한을 위임하는 데 서툴거나 주변에 책임을 함께 나누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탈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도 동두천감리교회 이양로 목사는 지난 5월부터 3개월간의 안식기간을 갖고 있다. 담임목사가 된 후 처음이다. 이 목사는 교회 사역에서 손을 떼고 말라위와 네팔, 필리핀 등 선교지를 방문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목사는 “꽉 짜인 목회 일정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쉼을 얻고 있다”며 “재충전하면서 새로운 목회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