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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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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하교회, 찬송가라고 소개된 한 사진



찬송가가 현대 예배곡보다 더 좋은 7가지 이유


미국의 예배사역자인 조나단 에이그너(Jonathan Aigner) 목사는 최근 파테오스(Patheos)에 '찬송가가 현대의 예배곡보다 더 나은 7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했다.


에이그너 목사는 "난 망상가가 아니다. 오늘날 찬송가를 부르는 교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같은 추세가 매우 비극적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서 '찬송가가 현대 예배곡보다 더 나은 7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1. 우리의 믿음의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깊고도 오래된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에서 우리는 고대의 훈련된 의식을 통해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전한다. 오래된 노래를 부르고, 오래된 기도를 하면서 과거 성도들의 믿음에 우리를 비추어본다. 이를 통해, 구원의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해놓았던 수 백년의 벽이 붕괴된다. 우리는 스스로가 거룩한 후대의 일부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2. 찬송가는 대게 의인들에 의해 쓰여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찬송가는 신학자들, 목회자들, 시인들, 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현대 예배곡들은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곡을 만드는 이들로부터 나왔다. 현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예배곡과 찬송가를 비교해보라.


3. 찬송가는 인기가 많지 않다. 


분명히 전통 찬송가의 인기는 수 십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이것보다 더 특별한 것이다. 찬송가는 인기있는,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관용구로 쓰여지지 않았다. 찬송가는 단순한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떤 인기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장르를 취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더 오래 불리고, 변화되지 않는 것은 상업적인 기준을 따른 것이 아니다.


4. 찬송가는 오랜 시간 검증을 받았다.


모든 찬송가들이 모든 현대 예배곡들보다 나은가? 물론 그렇지 않다. 수세기를 지나면서 실제로 형편없는 곡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늘날 우리의 찬송가는 세대를 거치면서 목회자들, 철학자들, 찬송가위원회, 교인들에게 매우 신중하게 검증을 받고,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교회와 예배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매우 풍부하고, 광대하고 다양한 수집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찬송가는 계속 각각의 세대를 그 사람들에게 맞게 적용시키면서 선하고, 신실하고, 견고한 곡들은 유지하고 나머지는 떨어트렸다. 이처럼 찬송가를 거부하고 오직 새롭고 시장성이 있는 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교만한 것이다.


5. 찬송가는 교인들을 위한 것이다.


찬송가는 전통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 예배곡들은 상업적으로 대규모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녹음된 음악은 본질적으로 비회중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개인이나 소그룹의 쇼케이스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괜찮지만 예배 음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6. 우리 아버지를 노래하는 것이 예배이다.


난 '찬송가가 너무 가사가 많고, 학구적이고, 너무 빽빽해서 예배를 드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 이 말도 맞다. 반복은 좋거나 나쁘거나 할 수 있고, 의미가 있거나 평범할 수 있다. 감정 그 자체는 나쁘거나 예배에 있어 낯선 것이 아니지만,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는데 대한 어떤 리트머스 시험지나 척도, 신뢰할 만한 신호는 아니다. 그렇다.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더 깊은 노력과 참여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함께 드리는 공동예배에 대한 훈련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와 같이 방황하는 자들을 예배의 장소에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7. 언어는 재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가 언어에 대해 신경을 쓰는가? 많은 목회자들 예배 인도자들, 예배자들이 내게 수년 동안 물어왔던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모르지만 당신은 알아야 한다.


의식은 신실함과 절제된 기도에 관한 것이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말에 의존한다. 이는 우아하고 웅변적이고 정제된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진리가 고상한 언어로 나타나고, 신중하게 자주 반복되어 우리 안에 뿌리 내리면, 우리는 필요한 교회가 된다. 우리의 신중하고 절제된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가 된다.


비평가들은 내가 예배 전쟁과 불협화음을 부추긴다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비난을 재빠르게 완전히 거부한다. 이것은 예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월하는 것이다. 교인들의 음악은 절대 인기 콘테스트를 의미하지 않았다.


교회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대중적인 예배곡들을 거부하고 역사적인 기독교 예식으로 돌아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출처 : 기독일보

http://kr.christianitydaily.com/se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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