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도원 운동의 역사
한국 기도원 운동의 역사
8.15 해방 이전에는 오늘날처럼 산 속에 정식으로 기도원을 설치하고 공개집회를 가지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개인들이 움막을 짓고 경건한 기도 생활을 하면서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두산산상기도회, 금강산기도회, 경주약수기도회, 서울삼각산기도회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나무걸이나 바위 등으로 천연적인 기도 장소가 마련된데에서 기도 생활을 하였던 것이지 건물을 짓고 조직적으로 기도원을 운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은 기도원이 설립된 것은 해방 이후이며, 1945년 8월 목사 유재현이 강원도 철원군에 세운 대한기독교수도원이 그 효시이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와 개인의 영성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기도원을 설립하여 부흥사로 활동하였으나 6.25 당시 납북당하였다.
이어 본격적으로 기도원 중심의 신앙 운동이 등장한 것은 목사 나운몽에 의해서였다.
그는 1945년 10월에 경북 금룡군에 용문산기도원을 세웠다.
이 용문산기도원은 한국 개신교 오순절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현재 활동중인 전국의 개신교 기도원들 중에서 중요한 일맥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에 와서 이 용문산기도원은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라는 독립적인 교단을 구성하였다.
이는 기도원 운동에서 출발하여 체계적인 교단을 성립시킨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쟁을 전후하여 기도원은 더욱 급속히 확산되었다.
박신출의 서울삼각산제일기도원을 비롯하여 삼각산특별기도원 등 20여개가 전국적으로 일시에 설립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급속하게 증가한 기도원은 지나친 신비적 열광주의 때문에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신교계에서도 큰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1970년 세마을운동의 전개와 환경보호를 위한 그린벨트법이 발효되면서 많은 기도원이 철거되었다.
이러한 조치 이후 기도원 운동의 양상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