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 시장에 살아있다 : 출21~23장

Gospel message

교회가 교회를 돕는다!

홈 > 말씀찬양 > 복음메시지
복음메시지

eda38673ecc61650a5b26919f3176ad9_1676022303_6906.pngeda38673ecc61650a5b26919f3176ad9_1676022303_6507.png

거룩, 시장에 살아있다 : 출21~23장

와우! 이제, 출애굽기 21장에서 23장 <통으로 숲이야기 : 통숲>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포인트 :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소의 받는 버릇까지도 파악하여 보상체계를 달리 정할 정도로 만드신 세심한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많은 구체적인 시행세칙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법은 한마디로 '거룩한 법'입니다.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말처럼 세상의 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강제력을 사용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을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에서는 '거룩'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주신 율법만이 '거룩한 법'입니다.

일반적으로 '법의 민족'하면 로마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은 A.D.529년에서 534년 사이에 편찬된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법전'보다 2,000년이나 먼저 주신 법입니다.

그리고 법 내용에 있어서는 유스티아누스 법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민족보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법의 민족'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이 율법은 A.D.12세기 중세 유대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유대의 랍비인 '모세 벤 마이몬' 랍비에 의해 '하라'의 긍정명령 248개와 '하지 말라' 의 부정명령 365개 총 613가지 법으로 정리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율법이 얼마나 세밀한지 소의 받는 버릇까지도 파악하여 보상 체계를 달리 정할 정도입니다.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지니라"(출21:36)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율법은 약자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길이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품위 있고 아름다운 법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22:21-22)

나그네의 설움을 어느 민족보다도 잘 알게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율법 중에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21:23-25)

이 법은 동형보복법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동형예방법으로 내 몸을 아끼듯이 상대방도 귀히 여기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 : 사람이 사람을 종이나, 노예로 부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은 거룩한 법이고, 품위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행하는 것은 '거룩'이며 '인간 됨'을 서로 누리는 것입니다.

특히 면제년에 관한 법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면제년 법은 누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종이 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종의 몸으로 6년이 지나 7년째가 될 때 반드시 그 사람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하라는 법입니다.

너 나아가 그 사람이 종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될 때 그를 빈손으로 내보내지 말고 후희 주라고 법으로 정해주셨습니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출2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면제년 법'을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과 노예의 생활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 하나 다르지 않게 한 생명 한 생명이 천하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을 강제로 종이나, 노예로 부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이후 역사에서 이 '면제년 법'과 관계하여 가장 중대한 사건이 예레미야 때에 다루어집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에 이 면제년 법이 일시적으로 실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렘34:8-9)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계약에 참여한 시드기야 왕과 백성들의 이 결정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번복됩니다.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렘34:11)

그러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어냥ㄱ을 맺으며 이르기를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렘34:13-17)

그러므로 결국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성을 불사르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렘34:22)



세 번째 포인트 : 하늘의 하나님은 인간들의 재판을 항상 눈여겨보십니다.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노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6-8)

뇌물은 가난한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뇌물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뇌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재판에서의 뇌물은 절대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정의를 굽게 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공정한 재판의 예로 룻기의 '보아스 재판'을 들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성읍 장로 10명을 초청하여 성문 망루에서 재판을 엽니다.

보아스의 이 재판은 '다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이방 나그네 룻을 살리는 재판'이었습니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에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룻4:10)

성경에는 이러한 공정한 재판과는 반대로 악하고 불의한 뇌물 재판도 있습니다.

바로 이세벨이 개입한 '나봇의 포도원 재판'입니다.

이 재판은 이세벨이 거짓 중인을 세워 진행했던 불의한 재판이었습니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왕상21:8-10)

결국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왕상21:18-19)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만,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던 율법으로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를 이루는 놀라운 공동체를 이뤄가기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갈멜산 기적에도 변한 것이 없으니 엘리야가 활동하던 그 시대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속이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네 번째 포인트 : 안식일은 공동체가 숨을 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나 심지어 소, 나귀와 같은 짐승들까지도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되 안실일에는 모두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출23:12)

안식일의 쉼은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 나라'에서 누구나 '제사'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그리고 안식일 법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안식년과 희년의 법도 제대로 지켜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이 안식일을 가지고 예수님과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12:1-2)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에 대해 꼬집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마12:8)이라고 정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12:9-10)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12:11-12)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장 '거룩'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안식일을 지키는 일'과 '성전에 서서 기도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 행하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우리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포인트 : 매년 3차례 여호와 앞에 '얼굴'을 보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절기를 지킬 것과 함께 유월절(무교절), 오순절(맥추절, 칠칠절), 초막절(수장절)의 명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1년에 3차례 당신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신앙공동체로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1년 3차례 명절에 하나님께 나아오면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땅의 소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고 헛되이, 아무런 의미 없이 하나님께 나오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명절인 설이나 추석은 개인 사정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지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나라의 3대 명절은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으로 가서 그 얼굴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것을 법으로 명시화해서 주셨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율법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지 즉, '제사장 나라'를 수렴하여 더 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까지 15,00년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지시기 전까지 이 '제사장 나라 법'을 가장 잘 지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유월절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눅2:41-42)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행하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 본 내용은 영상에서 옮겼으며, 저작권은 '조병호 통박사' 에 있습니다.

0 Comments
포토 제목
a37c65bdfe62a649b27013ff27da007b_1674969923_1732.png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