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의 본명과 본질을 회복하라]
현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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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08:52
마태복음 5:1~10
주일예배.26.9.13
■■ 설교정리 ■■
부제: 산상수훈을 인간의 윤리로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
1. 모든 종교의 구원관과 기독교의 구원관을 구별해야 한다
1)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종교적 사고
① 세상의 많은 종교와 사상에서는 인간의 수행과 노력, 선행, 공덕, 도덕적 삶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② 인간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종교를 넘어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 의식에도 나타난다.
③ 봉사하고, 선행하고, 수행하고, 자신을 절제하고, 종교적 계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제시된다.
④ 이러한 사고의 중심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인간의 행위가 놓여 있다.
⑤ 결국 구원의 문제에서도 인간의 노력과 공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2) 기독교 복음의 출발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① 기독교 복음은 “인간이 무엇을 해야 구원받는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② 먼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에서 출발한다.
③ 인간은 죄인이며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④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ㆍ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⑤ 구원의 근거는 인간의 자랑할 만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⑥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3)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①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에게 착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러 오신 분이 아니다.
② 예수님 자신이 구원의 길이 되셨다.
ㆍ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③ 따라서 기독교의 핵심 질문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만이 아니다.
④ 더 근본적인 질문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예수님 안에 있는가?”이다.
ㆍ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2.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도 행위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1)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문제
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착하게 살아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② 봉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③ 헌금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④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⑤ 경건한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⑥ 그러다 보면 신앙의 중심이 예수님에서 자기 자신으로 이동한다.
2) 이것이 율법주의의 위험이다
① 율법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②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다.
ㆍ로마서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③ 문제는 인간이 율법을 지켜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데 있다.
④ 인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
ㆍ로마서 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⑤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낸다.
⑥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3. 산상수훈을 윤리책으로만 읽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1)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다
① 흔히 “산상수훈” 또는 “산상설교”라고 부르는 내용은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다.
② “산상수훈”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제목은 아니다.
③ 후대 교회에서 예수님이 산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명칭이다.
④ 아우구스티누스는 4~5세기에 활동하면서 마태복음의 산상설교를 해설한『De sermone Domini in monte』를 남겼다. 따라서 원문의 “어거스틴 때부터 산상수훈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는 취지는 대체로 이해할 수 있지만, 오늘날의 한국어 명칭이 그때 그대로 확립되었다고 단순화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2) 산상수훈은 단순한 도덕 강의가 아니다
① 마태복음 5장 1~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ㆍ마태복음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②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선포한다.
③ 따라서 산상수훈에는 분명히 윤리적·도덕적 가르침이 있다.
④ 그러나 그것을 단순한 인간 윤리로 축소하면 산상수훈 전체의 중심인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놓치게 된다.
4. 팔복을 인간의 도덕적 노력으로 해석하면 구원론이 뒤틀린다
1) 첫 번째 복 ― 심령이 가난한 자
①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② 이것을 단순히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도덕적 명령으로만 읽을 수 있다.
③ 그러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만들어진다.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 내가 겸손해져야 한다 → 내가 겸손해지면 복을 받는다 → 천국에 들어간다
④ 이렇게 되면 인간의 행위가 천국에 들어가는 근거가 된다.
⑤ 결국 예수님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는 도덕 선생으로 축소된다.
2) 산상수훈 전체의 중심은 예수님이시다
① 예수님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는 윤리 교사가 아니다.
②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선포한다.
③ 산상수훈은 “인간이 스스로 완벽한 사람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다.
④ 오히려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5.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1) 인간의 의
①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한다.
② 착한 행동을 한다.
③ 봉사한다.
④ 윤리를 지킨다.
⑤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려고 한다.
⑥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의를 세울 수 있다.
ㆍ누가복음 18:11-12에서 바리새인은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2) 하나님의 의
① 복음에서 의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의가 아니다.
②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의가 핵심이다.
ㆍ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③ 그러므로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6. 산상수훈은 오히려 인간의 죄성과 무능력을 드러낸다
1) 살인에 대한 말씀
①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② 마음속의 분노까지 다루신다.
ㆍ마태복음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③ 인간은 외적인 행동만 통제한다고 하나님의 의를 완성할 수 없다.
2) 간음에 대한 말씀
① 예수님은 실제 간음 행위만 말씀하지 않는다.
② 마음의 음욕까지 다루신다.
ㆍ마태복음 5:28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③ 이것은 인간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한다.
3)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ㆍ마태복음 5:4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① 이것을 단순한 윤리 강령으로만 읽으면 인간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덕적 과제가 된다.
②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때 나타나는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③ 따라서 산상수훈은 인간의 자력으로 의를 만들어 내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의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7. “눈을 빼고 손을 찍으라”는 말씀도 인간의 무능력을 생각하게 한다
1) 예수님의 강력한 표현
ㆍ마태복음 5:29-30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① 이 말씀을 문자적인 자기 신체 훼손의 명령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② 예수님은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극단적인 표현으로 가르친다.
③ 인간의 죄는 행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서 시작된다.
2) 인간 스스로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이유
① 음욕이 마음에서 발생한다.
② 탐욕이 마음에서 발생한다.
③ 교만이 마음에서 발생한다.
④ 미움이 마음에서 발생한다.
⑤ 그러므로 외적인 행동만 통제한다고 죄의 뿌리가 해결되지 않는다.
ㆍ마가복음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8. 그래서 복음은 “내가 한다”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다”로 이동한다
1) 인간 중심의 신앙
① 내가 구원받기 위해 노력한다.
② 내가 의롭게 살아야 한다.
③ 내가 계명을 지켜야 한다.
④ 내가 경건해야 한다.
⑤ 내가 봉사해야 한다.
⑥ 내가 선행해야 한다.
⑦ 내가 천국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복음 중심의 신앙
①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푸셨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일을 이루셨다.
③ 예수님의 부활이 구원의 소망을 열었다.
④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신다.
⑤ 믿는 자에게 새로운 삶의 열매가 나타난다.
ㆍ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9. 그렇다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1) 원문의 중요한 균형
① 설교에서 강조하는 “오직 예수님”은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②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열매를 맺는다.
③ 문제는 행위가 구원의 원인이냐,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냐의 순서다.
ㆍ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④ 8~9절에서는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⑤ 그리고 10절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았다고 말한다.
⑥ 따라서 성경적 구조는 다음과 같다.
ㆍ은혜 → 믿음 → 구원 → 성령의 역사 → 변화된 삶 → 선한 열매
2) 행위는 구원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다
①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은 중요하다.
② 그러나 열매를 맺어야 나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③ 살아 있는 나무이기 때문에 열매가 나타난다.
ㆍ마태복음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④ 따라서 믿음과 행위를 서로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원인과 결과를 바르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10. 성령의 열매와 인간의 윤리는 다르다
1) 인간의 윤리
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② “착하게 살아야 한다.”
③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④ “겸손해야 한다.”
⑤ “봉사해야 한다.”
2) 성령의 열매
ㆍ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① 성령의 열매는 단순히 인간이 자기 훈련을 통해 만들어 내는 윤리적 결과와 동일하지 않다.
② 성령께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변화다.
③ 따라서 기독교의 거룩함은 인간의 자기수양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1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라는 예수님의 초청
1) 예수님은 율법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신다
ㆍ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① 죄와 율법의 문제로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을 예수님께서 부르신다.
② 예수님은 “너희 힘으로 더 열심히 해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③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다.
④ 이것이 복음의 방향이다.
2) 참된 자유는 예수님 안에 있다
ㆍ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① 진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② 요한복음의 문맥에서 진리는 예수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③ 따라서 신앙의 핵심은 율법 자체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12. 산상수훈의 역사적·성경적 배경
1) 예수님 시대의 유대 사회
①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② 종교적으로는 율법, 성전, 회당,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③ 율법은 유대인의 신앙과 사회생활 전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④ 예수님은 율법 자체를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드러내셨다.
ㆍ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2) 모세와 예수님의 산
①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산에서 가르치는 분으로 묘사한다.
② 구약에서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장면과 연상되는 배경이다.
③ 그래서 마태복음의 산상설교는 예수님이 단순한 윤리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④ 실제 연구에서도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는 팔복에서 시작하여 율법, 기도, 재물, 판단, 황금률, 좁은 문, 열매, 반석 위의 집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13. 팔복의 역사적·신학적 의미
1) 세상이 말하는 복과 하나님 나라의 복은 다르다
① 세상은 돈을 많이 가지면 복이라고 말한다.
② 건강하면 복이라고 말한다.
③ 성공하면 복이라고 말한다.
④ 인정받으면 복이라고 말한다.
⑤ 그러나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등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2)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보여 준다
① 심령이 가난한 자 — 천국이 그들의 것
② 애통하는 자 — 위로를 받음
③ 온유한 자 — 땅을 기업으로 받음
④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배부름을 얻음
⑤ 긍휼히 여기는 자 — 긍휼히 여김을 받음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하나님을 봄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천국이 그들의 것
ㆍ여기서 중요한 것은 팔복이 단순한 “인간이 노력해서 복을 얻는 방법”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ㆍ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선포한다.
ㆍ특히 첫 번째와 여덟 번째 복이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표현으로 연결된다.
14. 왜 다른 종교에서도 산상수훈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가
1) 예수님을 제거하고 윤리만 추출하면 보편적 도덕처럼 보일 수 있다
① 겸손하라.
② 원수를 사랑하라.
③ 화평하게 하라.
④ 긍휼히 여겨라.
⑤ 욕심을 버려라.
⑥ 다른 사람을 섬겨라.
⑦ 이런 명령만 떼어내면 어느 종교나 철학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윤리처럼 보일 수 있다.
⑧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산상수훈의 독특한 기독론적·하나님 나라적 맥락이 약화된다.
2) 산상수훈의 중심은 “예수님 없는 윤리”가 아니다
①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계속해서 “내가”라는 권위 있는 말씀을 사용한다.
②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③ 마태복음 7장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ㆍ마태복음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④ 따라서 산상수훈을 단순히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률”로 축소하는 것은 본문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15. 공자와 유교에 대한 역사적 배경
1) 춘추전국시대의 배경
① 공자는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에 활동했다.
② 당시 중국 사회는 정치적 혼란과 제후국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었다.
③ 공자는 사회의 질서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④ 인(仁), 예(禮), 효, 도덕적 수양 등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2) 맹자의 발전
①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 중요한 유가 사상가다.
②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가능성, 왕도정치 등을 발전시켰다.
③ 이후 유교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3) 조선과 유교
① 조선 왕조에서는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② 가족 질서, 효, 예절, 제례, 사회적 신분질서 등이 유교적 가치와 깊이 연결되었다.
③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예의”, “도리”, “효”, “어른 공경” 등에 관한 문화적 표현에서 유교적 전통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④ 따라서 한국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과 한국 문화의 윤리적 전통을 구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16. 불교와 비교할 때 주의할 점
1) 불교의 수행 중심 구조
① 불교에는 계율, 수행, 명상, 자비, 업과 윤회, 해탈 등의 다양한 개념이 존재한다.
② 전통과 종파에 따라 구원 또는 해탈을 이해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르다.
③ 따라서 “불교는 모두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는 종교”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2)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
①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② 죄와 구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핵심이다.
③ 불교의 핵심 개념은 죄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이나 십자가 대속과는 다른 구조를 가진다.
④ 그러므로 외적으로 “착하게 살라”는 비슷한 윤리적 표현이 있다고 해서 두 종교의 구원론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17. 천주교에 대한 설교 내용은 신학적으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1) 원문 설교의 주장
① 원문에서는 천주교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고 단순하게 설명한다.
② 그러나 이것은 현재 천주교 공식 교리를 정확하게 요약한 표현은 아니다.
2) 천주교 공식 교리의 실제 내용
① 가톨릭 교리서도 구원의 시작을 하나님의 은혜에 둔다.
② 인간이 최초의 은혜를 자기 공로로 얻을 수 없다고 명시한다.
③ 동시에 은혜를 받은 인간의 믿음과 사랑의 협력, 선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④ 따라서 개신교의 이신칭의 교리와 가톨릭의 은총·칭의·성화·공로 교리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가톨릭은 단순히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친다”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단순화가 된다.
3) 설교에서 비교할 때 더 정확한 표현
① 개신교 복음주의의 핵심: 인간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② 그 결과로 선한 행위와 성화의 열매가 나타난다.
③ 그러므로 선행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에서 나타나는 열매로 이해한다.
④ 이 지점을 중심으로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구원론을 비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18.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충돌
1)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①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율법 자체를 악하게 생각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② 오히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 했다.
③ 문제는 율법의 목적을 놓치고 외적인 행위와 인간의 전통을 중심으로 율법을 적용할 때 발생했다.
2) 예수님은 율법의 내면적 의미를 드러내셨다
① 살인하지 말라 → 분노와 미움의 문제
② 간음하지 말라 → 마음의 음욕 문제
③ 맹세하지 말라 → 말의 진실성 문제
④ 원수를 미워하라 → 원수 사랑의 문제
⑤ 이것은 외적 행위만 통제하는 윤리보다 훨씬 깊은 차원의 의를 요구한다.
3) 그래서 인간의 자기 의가 무너진다
① 외적인 죄만 없애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마음을 들여다보면 죄를 발견한다.
② 결국 인간은 자기 의를 자랑할 수 없게 된다.
ㆍ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19. 말씀에 찔렸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
1) 말씀을 거부하는 반응
① 자신의 죄가 드러날 때 말씀을 미워할 수 있다.
②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③ 자신의 기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거부할 수도 있다.
2) 회개하는 반응
① 같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
②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있다.
③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갈 수 있다.
ㆍ사도행전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④ 말씀의 목적은 단순히 인간을 정죄하는 데 있지 않다.
⑤ 죄를 깨닫고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는 데 있다.
20.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
1)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
①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② 그러나 구원받은 믿음은 반드시 삶에 영향을 준다.
ㆍ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③ 따라서 “행위가 필요 없다”는 말과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둘 다 극단적이다.
④ 성경적 균형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 믿음이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2) 성령의 열매가 증거가 된다
① 사랑
② 희락
③ 화평
④ 오래 참음
⑤ 자비
⑥ 양선
⑦ 충성
⑧ 온유
⑨ 절제
⑩ 이것은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다.
21. 신앙생활의 주체가 누구인가
1) 인간이 주체가 되는 신앙
① 내가 결정한다.
② 내가 노력한다.
③ 내가 경건해진다.
④ 내가 의롭게 된다.
⑤ 내가 구원을 완성한다.
2) 예수님이 주체가 되는 신앙
① 예수님을 믿는다.
② 예수님께 자신을 맡긴다.
③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
④ 말씀에 순종한다.
⑤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ㆍ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3) 핵심은 인간의 무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①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만 바라보면 좌절한다.
②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바라보면 복음이 보인다.
③ “성령께서 내 안에서 무엇을 하시는가?”를 바라보면 성화의 길이 보인다.
22. 산상수훈의 올바른 방향
1) 잘못된 해석
① 심령이 가난해져라.
② 그러면 복을 받는다.
③ 복을 받으면 천국에 간다.
④ 그러므로 내가 겸손해져야 한다.
⑤ 내가 선행해야 한다.
⑥ 내가 계명을 지켜야 한다.
⑦ 내가 구원의 주체가 된다.
2) 복음 중심의 해석
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②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
③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신다.
④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신다.
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
⑥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신다.
⑦ 그 결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나타난다.
⑧ 그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
23. “오직 예수님”과 “선한 삶”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1) 순서가 중요하다
① 예수님 없는 선행 → 인간의 자기 의가 될 수 있다.
② 예수님 안에서의 선행 → 믿음의 열매가 된다.
ㆍ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③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④ 그러므로 “오직 믿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⑤ 오히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을 변화시킨다.
24. 이 설교의 핵심 메시지
1) 인간은 구원의 주체가 아니다
① 인간의 선행
② 인간의 봉사
③ 인간의 금욕
④ 인간의 경건
⑤ 인간의 계명 준수
⑥ 인간의 윤리
⑦ 인간의 종교적 열심
ㆍ이것들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2) 구원의 주체는 예수님이다
① 예수님이 길이다.
② 예수님이 진리다.
③ 예수님이 생명이다.
④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다.
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⑥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3) 구원받은 자에게는 열매가 나타난다
① 예수님을 사랑한다.
② 말씀을 사랑한다.
③ 죄를 미워한다.
④ 회개한다.
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
⑥ 사랑한다.
⑦ 용서한다.
⑧ 섬긴다.
⑨ 거룩함을 추구한다.
⑩ 선한 일을 행한다.
ㆍ그러나 이 모든 것은 구원을 사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다.
25. 설교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산상수훈을 인간이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윤리 강령으로 만들지 말고, 율법을 완성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해하라. 인간의 행위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열매다.”
26. 이 설교에서 특히 강조할 수 있는 핵심 성경구절
①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②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③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④ 로마서 3:28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⑤ 갈라디아서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⑥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⑦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⑧ 마태복음 7: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⑨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⑩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7. 본 설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1) “천주교는 착한 일만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① 그러나 가톨릭 공식 교리 전체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은 아니다.
② 가톨릭 교리에서도 구원의 시작을 하나님의 은총에 두며, 인간이 최초의 은혜를 자기 공로로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③ 다만 가톨릭은 은총을 받은 인간의 믿음·사랑·선행의 협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신교의 이신칭의와 구원론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④ 이로써 가톨릭의 은총·칭의·성화와 개신교의 이신칭의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 “산상수훈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① 산상수훈은 실제 제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② 마태복음 7:24도 “듣고 행하는 자”를 강조한다.
③ 따라서 산상수훈을 단순히 “인간은 못 지키니까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로 끝내면 본문의 제자도와 순종의 요구가 약화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④ 더 정확한 표현은 “산상수훈의 의를 인간의 자기 공로로 성취하여 구원받을 수는 없지만, 구원받은 제자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이다.
3) “행위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들어서는 안된다
① 구원은 행위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다.
② 그러나 구원받은 믿음은 행위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다.
ㆍ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③ 그러므로 설교의 가장 정확한 결론은 이것이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행위의 열매가 나타난다.”
4) WCC·NCCK·로잔 등을 “가짜”라고 단정하는 부분에 대한 검토
① 이것은 산상수훈 본문의 해석 문제와 별개의 교회사·교단·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평가 문제다.
② 따라서 이 부분은 종교다원주의와 같이 복음의 유일성을 훼손하는 그릇된 신학을 경계해야 한다는 성경적 명제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28. 최종적으로 잡아야 할 설교의 중심축
1) 인간은 자기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으며, 행위로 나타나는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① 인간은 완전한 의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다.
② 인간의 선행을 구원의 근거로 삼으면 자기 의에 빠진다.
③ 종교적 열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다.
2) 구원은 오직 예수님께 있다.
① 예수님은 길이다.
② 예수님은 진리다.
③ 예수님은 생명이다.
④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다.
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의 구원을 받는다.
3) 산상수훈은 예수님 없는 윤리책이 아니다.
①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선포한다.
② 예수님은 율법의 수여자 해석자 완성자로서 참된 의미를 밝히신다.
③ 인간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다루시면서, 인간의 자기 의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게 한다.
4) 믿음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①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
② 사랑과 긍휼이 나타난다.
③ 회개와 순종이 나타난다.
④ 선한 행위가 나타난다.
⑤ 그러나 그 열매는 구원을 사기 위한 값이 아니라 구원받은 생명에서 나타나는 증거다.
5) 그러므로 신앙의 질문은 이것이다.
① “나는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② “나는 얼마나 많이 봉사했는가?”
③ “나는 얼마나 많은 계명을 지켰는가?” 가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