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친절합니다 (고린도전서 13:4) - 박정제 목사
사랑은 친절합니다 (고린도전서 13:4)
어제 11번째 작은교회 이야기를 마치고 오늘부터 12번째 작은교회 이야기를 쓴다. 한해를 마감하며 12개의 작은교회들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다. 12가지 다른 색깔을 가진 교회들을 통해 이 땅에 주님이 통치하시고 인도하시는 교회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아울러 작은교회로 하여금 그들이 가진 작음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응원하며 그 색깔을 지켜가기를 소망하며 썼다. 주님, 세상에 작은교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숫자와 크기로 대변되는 세상에 작아진 교회들을 응원합니다. 이들이 진정 이 땅에 부흥을 이루는 소중한 주님이 머리이신 교회되게 하소서.
오늘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어제와 동일하며 그 두 번째 사랑의 특징을 묵상한다. 4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오늘 묵상할 말씀은 <사랑은 온유하며>이다. 메시지 성경은 <사랑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마음을 씁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친절합니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 χρηστεύομαι(크레스튜오마이)는 세속 헬라어 문헌에 나오지 않고 기독교 문헌에만 나온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랑의 특징을 세상은 표현할 수 없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뜻은 ‘친절하다, 온유함을 보이다’로 사랑은 친절로 표현된다는 의미이고 그 내면에 온유함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을 유진 피터슨 목사는 “어떻게 친절이 가능한가?”라는 부분에 대해 사랑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마음을 쓰기에 가능하다고 해석을 달은 번역을 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다. 자기감정이 중요하고 자기 상황이 먼저가 된다. 그러나 사랑할 때 특징은 자기가 아닌 상대방이 더 중요해져 그 사람에게 마음을 쓰게 되고 그 표현이 친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온유하며> 친절하다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어제의 일이 생각난다. 어제저녁 아내와 나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내가 한 학부모로부터 감사패와 퇴직기념 타월에 응원 메시지를 담은 선물과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4개월이 지났는데 또 그 학부모는 지금 남편이 1년째 직장이 없어 찾고 있는 분인데 이런 엄청난 친절을 베풀었다. 남편되시는 분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다가 들어올 때면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들어온다고 한다. 아이가 걱정할까봐... 이렇게 자기 걱정이 산더미처럼 있는 분이 아내를 기억해주고 소중한 감동을 온 가족이 다 함께 우리 집에까지 찾아와 전해 주었으니 얼마나 큰 감동이었겠는가?
이것이 자기감정에 온유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진정한 사랑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자기 아이를 봐줄 수도 없는 퇴직 어린이집 교사에게 한해를 보내며 아무런 유익이 없는데...
헛것처럼 버려질 수 있었던 지난 10년의 헌신을 보물로 작품으로 만들어준 친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직 사랑이 무엇인지를 내게 가르치려고 하나님은 그분 가정을 감동시켜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은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우리의 전도대상자 가정인데 우리보다 더한 사랑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어 부끄럽기도 하고 큰 감동으로 사랑의 스승이 되었다.
사랑은 자기감정을 넘어 상대방을 기억해주고 친절함으로 만나주는 것이다란 오늘 말씀이 큰 울림을 가지고 들려진다. 한 해의 끝자락에 올 한해 베풀어주신 하나님과 이웃을 기억하며 친절함으로 자기감정을 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이 하루의 삶, 아쉬움과 원망과 한숨으로 하루를 살지 않게 하시고 오늘도 사랑으로 친절을 베푸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자기감정을 넘어 친절함으로 남을 배려하고 축복해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이 실천되는 날 되게 하소서. 저는 늘 작은 ‘나’라는 사람의 감정과 환경에 갇혀 버립니다. 오늘 사랑의 날개를 펴고 나를 넘어 이웃을 살피며 친절히 행하는 사랑의 실천이 있는 하루로 이 하루를 사용케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