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엘라해로이 (창세기 16:1-16)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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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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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라해로이 (창세기 16:1-16)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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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라해로이 (창세기 16:1-16)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하루>를 산다는 것이 참 다양하다. 그 다양함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믿음이다. 주님, 이 하루도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날 되게 하소서.


목회사관학교가 있는 날, 몸살과 체함으로 컨디션이 최악이다.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60의 나이에도 이런 컨디션 하나를 조절하지 못하니 참 주님 보시기에 언제나 철이 들까?


오늘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관생도들이 모여 찐 목사의 길을 걷고 있다. 소중한 강사님들이 헌신하여 이분들을 섬기시고 계신다. 주님, 이 자리를 축복하소서. 이 소중한 이들을 받으시고 축복하소서.


이날 주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본문에는 하갈의 임신과 사래와의 갈등 그리고 하갈을 도망과 하나님의 살피심이 나온다. 4절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아브람에게 여종을 준 것은 사래이다. 그러므로 하갈은 사래가 생각하기에 매우 순종적인 여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갈이 임신하자 사래가 보기에 태도가 달라져 자신을 멸시한다고 생각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하갈이 임신하고 아무래도 예전처럼 빠릇빠릇하게 움직이지 못하며 아이를 생각하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래입장에서 이것이 자신을 무시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래는 아브람의 동의를 얻어 하갈을 학대하게 된다. 6절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아이를 막 임신하여 조심해야 할 시기에 사래는 하갈을 학대했다. 학대했다는 히브리어 단어가 무엇인가를 억지로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래는 하갈에게 억지로 어려운 일을 시킨 것이다.


결국 하갈은 이를 견디다 못해 도망간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하갈은 여종으로서 일을 감당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자신안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그대로 있을 수 없어 도망간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생긴다. 아브람에게 언약된 자녀도 아니고 아브람과 사래의 불신이 빚어낸 사건이며 그로 인해 도망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 여인을 하나님께서 찾아가신다. 7-9절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신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광야의 샘물>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하갈은 광야를 지나왔다. 그러나 샘을 만나 목을 축이는 가운데 그곳에 기다리신 하나님은 이 도망친 여종을 만나주신다. 이 부분이 오늘 매우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다시 사회는 종이 인간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이런 여인 하나 그저 없어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회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며 이 샘곁에 선 하갈을 만나러 오셨다. 그리고 하갈의 사연을 들으신 후 사래에게 돌아가 복종하라고 하신다.


그저 무조건 복종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 하찮은 여종인 자신과 자신이 임신한 아이를 향해 하나님이 그 고통을 들으셨다고 그를 축복하신다.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하갈, 아니 하소연하면 할수록 불리해지고 죽어야만 하는 상황에 도망 온 보호막 없는 하찮은 여종의 고통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이 아침 깊이 묵상한다. 나의 하나님은 이런 여인의 고통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멘. 할렐루야~


어제 늦게 한 분의 전화를 받고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그분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초췌한 모습이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힘겨우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구의 잘못이든, 무엇이 잘못되었든 지금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목사로서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답답함이 느껴졌다. 내 속으로 주여, 붙잡아 주소서. 밖에 외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오늘 하갈의 입장을 묵상하며 그분이 떠오른다. 얼마나 힘겨우셨을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되지 않는 상황, 그 무엇을 해도 남는 것이 없고 가슴만 찢어지는 상황~ 주님~


이런 하갈을 광야의 샘까지 찾아가 만나주시고 그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며 그를 살펴주시며 그로 다시 그 자리에 서서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께서 오늘 그분을 광야의 샘에서 만나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갈은 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런 고백을 올려드린다. 13절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브엘라해로이>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물 어제 무력한 내 모습과 함께 오늘 유력하신 브엘라해로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영혼의 샘물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솔직히 어제 인간의 초라함을 보았다. 사람이 얼마나 무력한지 무너지는 세상앞에서 지푸라기를 잡고 싶어 나를 찾아왔는데 나에게 던져줄 지푸라기가 없었다. 그저 몇 마디의 말을 들어줄 뿐이었다. 하나님은 브엘라해로이가 되시는데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따르는 종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돌아서게 하고 나니 정말이지 가슴이 너무 아파 힘들다.


그런 내게 주님은 인간의 한계와 함께 그런 하갈을 만나 주시고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앞에 ...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 자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순종으로 주님을 따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그 일에 겸손히 엎드려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브엘라해로이>가 되신 하나님께 내어드린다. 주님 살펴주소서.


주여, 그분의 고통을 들어주소서. 그리고 하갈처럼 살펴주사 다시 돌아갈 힘을 주소서. 다시 시작할 힘이 일어나게 하소서.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라마나욧 스페이스 R>을 위한 중보기도

1.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세워진 공간에서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3. <스페이스 R> 사역이 자리를 잡고 다음세대 사역자를 일으키도록

4. 땡스기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세워지도록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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