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창세기 38:1-11)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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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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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창세기 38:1-11)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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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창세기 38:1-11)


어제 사무실에 들러 처리할 일을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영종도와 을왕리 해변까지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사람들이 있는 곳을 피해 조용히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휴가를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오늘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며 7월의 마지막 날이다. 7월을 마감하는 날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


본문에는 창세기 구성에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요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돌발적으로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유다 가정의 안타까운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은 그중 유다의 결혼과 자녀의 죽음이라는 장면까지에 있는 말씀을 묵상한다.


본문을 보면 어떤 이유인지 유다가 형제들로부터 떠나고 있다. 1절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그가 형제들로부터 떠난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아마도 요셉을 팔아버린 그 죄책감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떠난 것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성경에 나오는 표면적 이유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가나안 사람과 친구가 되어 가나안의 문화에 동조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둘람은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24키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나안의 31개성 중 하나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굴이 있던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마 유다는 요셉을 팔고 그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방황하며 가나안의 문화에 취하며 친구를 따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생은 단편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상처는 또 다른 행동을 낳아서 더 큰 문제를 만든다는 사실을 유다를 통해 묵상하게 된다.


상처를 올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해 짐을 본다. 유다는 이곳에 거하면서 이곳의 여인과 결혼한다. 2절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을 하며 부모와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또 이삭이 야곱에게 당부하여 가나안과의 혼인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그 뜻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여인과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낳는다. 문제는 이들 자녀들이 가나안 여인의 세상적 문화속에 자라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7절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엘>이란 이름은 파수꾼, 경계하는 자라는 뜻인데 아마도 유다는 가나안의 문화속에 살면서 그래도 경계하라는 의미로 그런 이름을 두었을 듯 한데 그는 전혀 경계하지 않고 가나안 문화에 동조되어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죽이신다.


이 정도 되면 유다가 영적인 감각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유다는 전혀 영적인 감각이 없다. 유다는 이런 엄청난 사건앞에 하나님을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오난도 가나안 문화속에 잠겨 형의 자손을 이어가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거부하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죽임을 당한다.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자 유다는 하나님앞으로 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는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낸다. 11절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언약 가문이 지금 얼마나 타락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언약가문으로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가나안에 동조되어 버린 이 가문의 안타까움이 바로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소중한 언약백성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두 가지 울림이 느껴진다. 하나는 상처를 올바로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은 상처를 낳는다. 상처없는 인생이 누가 있을까?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또 힘이 있어도 좋은 자리에 있어도 상처는 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유다처럼 부모를 떠나고 형제를 떠나고 세상에 취하면 상처가 치료되는가? 그것은 유다를 정말 치명적으로 고통케 하는 일임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려진다. 그렇다. 상처는 주님께 갈 때 치료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이 영향력을 상실할 때 그들은 언약의 땅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을 묵상한다. 오늘이란 자리는 세상처럼 돈과 힘을 가지고,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행세하라고 주신 자리가 아니다. 내게 주신 힘과 은사와 재능과 능력이 하나님의 뜻 즉 세상에 평안을 주며 구원을 이루는 삶이 되라고 주신 것이다. 아멘.


영향력을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이 메시지가 오늘 매우 큰 울림으로 내게는 들려진다. 과연 라마나욧과 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영향력의 문제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오늘 어떤 영향력을 내 주변에 끼치고 있는가? 심각하게 질문해 본다.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 함께하시는 후원자님에게 부담만을 주는 그런 인생인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영향력에 동조되고 있는가?


코로나에 영향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코로나에 영향을 받는 교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교회가 코로나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라마나욧과 내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돌아보면 그동안 내 모습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세상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던 순간이 많았다. 작은 상처들로 인해 본래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유다처럼 넘어져 영향력을 잃고 온 것은 아닌지 오늘 아침 깊이 묵상해 본다.


주님 제가 주님의 부르신 자리에 바로 서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오늘이란 시간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떤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지 다시 점검하며 그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로 돌아가기를 다짐한다. 주님, 이 종을 붙잡아 주소서. 어떤 상처든지 주님앞에 가져가 치료되게 하시고 주님이 뜻하신 영향력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을 일으켜 다음세대가 하늘부흥으로 일어나는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는 삶 되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비빌언덕과 플렛폼으로 쓰여질 30억 씨앗자금을 허락하소서.

2. 이곳에서 진짜 목사들이 세워져 다음세대를 일으키게 하소서.

3.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준비할 사람과 재정과 길을 열어주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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