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의 해석 오류를 조심하라
현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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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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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오류는 21세기의 안경을 쓰고 1세기의 텍스트를 재단하는 것이다. 특히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달란트 비유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가장 심하게 왜곡된 본문 중 하나이다. 대부분은 이 비유를 성과주의, 자기 계발, 혹은 재산 증식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경영학 강의를 하러 이 땅에 오신 게 된다. 과연 그럴까?
1세기의 법적 상식으로 한 달란트를 땅에 묻는다는 것은 당시 법적 기준으로, 타인의 돈을 맡았을 때 그것을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었다. 이 행위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책임감 있고 성실한 보존 방식이었다. 그래서 땅에 묻었다가 분실했을 경우 그 관리인은 법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방탕하거나
나태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주인의 재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당대 최고의 '안전 수칙'을 준수한 철저한 수비수였다. 그런데 왜 주인은 그를 향해 악하고 게으르다고 호통을 쳤을까? 여기서 이 비유의 첫 번째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들은 바로 ‘보존’에 목숨 걸었던 ‘유대의 종교 지도자 특히 서기관’들이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주인(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종들은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나 예언자들을 나타낸다. 유대 용법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끊임없이 주인(왕)과 종들의 관계로 설명한다. 또한 오랜 부재 후에 돌아오는 주인(왕)의 개념도 시온으로 돌아오는 여호와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구약은 주인(왕)이 돌아와서 신실하지 못한 종을 심판하는 것을 강조한다. 아모스 선지자는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암5:8)는 말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오심 즉,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여 심판받을 것을 예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온 세상을 복되게 할 선교적 사명이라는 거대한 '달란트'를 맡기셨다. 시온으로 돌아올 왕을 기다리며 그들은 이방의 빛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계시와 율법이라는 보화를 자기들만의 전통과 규정이라는 땅속에 깊이 묻어>버렸다. 이방인과 섞여 율법이 더러워질까 봐, 혹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훼손될까 봐 거룩을 '보존'하는 데만 급급했다. 복음을 유통하여 생명을 살리는 대신, 자신들이 만든 종교적 울타리 안에 가두어 마비시킨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전통의 먼지 아래 묻어버린 그들은 메시아가 누구인지 몰랐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땅속 깊이 율법을 보화로 여긴 채 파묻어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적하신 <보존의 신학>이다.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는 이 악하고 게으른 것을 예수님은 달란트의 비유로 깨닫게 해주신다. 우리 주영광 교회의 성도들은 선하고 신실한 종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