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법과 복음 제4부 [애통과 죽음, 위로와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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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과 복음 제4부 [애통과 죽음, 위로와 생명]

■ 율법과 복음 제4부 
[애통과 죽음, 위로와 생명] 
마태복음 5:4 
주일예배 26.10.4


■■ 설교정리 ■■

1 -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 신앙의 마지막 질문은 사랑이다
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하며 살았느냐이다.
②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 사랑이 없다면 믿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③ 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가 사랑이다.
④ 갈라디아서 5:22~23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한다.
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서로 분리된 아홉 개의 독립적인 열매라기보다 사랑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

2) 사랑은 성령의 역사로 깨닫게 된다
① 성령으로 충만해질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② 베드로후서 1:5~7은 믿음에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를 더하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한다.
③ 성경 전체의 구속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④ 로마서 5:8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고 말씀한다.
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속 사역을 통해 확증되었다.


2 - 인간의 가장 큰 애통은 죽음이다

1) 인간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난다
① 인생에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② 사람은 고통과 상처를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의 조언과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③ 그러나 인간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죽음이다.
④ 히브리서 9:27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한다.
⑤ 죽음은 인간이 피하고 싶어 하는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 가운데 하나다.

2) 죽음은 인간의 애통을 극대화한다
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특히 부모보다 자녀가 먼저 죽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애통 가운데 하나다.
② 사람들은 장례식에서 유가족을 위로하지만 깊은 상처와 슬픔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③ 인간의 힘과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애통이 존재한다.
④ 그래서 인간은 고통 가운데 자신을 먼저 의지하고, 다음에는 사람을 의지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많다.
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은 하나님을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3 - 마태복음 5:4의 역사적 배경

1) 예수님의 8가지 사역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연결된다
① 마태복음 5~7장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시간동안 어떤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고의 말씀이다.
② 마태복음 5:1~2는 예수님이 산에 올라 앉으시고 제자들이 나아오자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③ 마태복음 4:23~25에 따르면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이때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④ 산상수훈은 단순한 도덕 강의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구속 사역을 구체적으로 선포하시는 말씀이다.
⑤ 당시 갈릴리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백성들은 정치적·경제적·종교적 압박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2)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 배경
①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지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②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준수와 정결 규례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③ 예수님은 단순한 외적 율법 준수를 넘어 죄인임을 고백하는 마음의 상태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④ 마태복음 5장에서는 살인, 간음, 맹세, 원수 사랑 등의 문제를 마음의 차원까지 확장해서 다룬다.
⑤ 그러므로 마태복음 5:4 역시 단순히 인생에서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게 주는 일반적인 위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4 - “애통하는 자”는 누구인가

1) 단순한 슬픔과 성경적 애통은 구별되어야 한다
① 모든 슬픔이 곧 마태복음 5:4의 애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② 인간에게는 질병, 가난, 실패, 죽음, 관계의 상처 때문에 생기는 일반적인 슬픔이 있다.
③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애통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애통과 연결된다.
④ 고린도후서 7:10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⑤ 그러므로 성경적 애통은 절망으로 끝나는 슬픔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이다.

2) 애통은 자신의 의로움을 무너뜨린다
① 사람은 자신의 선함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쉽다.
② “나는 이 정도 신앙생활을 했으니 괜찮다”는 생각도 인간의 자기 의가 될 수 있다.
③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인간의 죄성과 부족함이 드러난다.
④ 이사야 6:5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한다.
⑤ 누가복음 18:13의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한다.
⑥ 예수님은 이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기도였다고 말씀하신다.


5 - 인간의 애통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1) 인간의 노력과 고행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다
① 스스로 금식하고 고난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죄를 해결하거나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② 갈라디아서 2:20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씀은 인간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③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근거한다.
④ 에베소서 2:8~9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며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⑤ 따라서 애통과 회개는 구원을 사기 위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반응이다.

2) 예수님은 홀로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
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심히 고민하시며 기도하셨다.
② 마태복음 26:39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다.
③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④ 요한복음 18:8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제자들은 가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⑤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인간의 공로에 의존하지 않고 예수님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⑥ 이사야 53:5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예언한다.


6 - 예수님 자신이 애통한 자로 오셨다

1) 예수님의 애통은 십자가와 연결된다
① 인간의 가장 큰 애통이 죽음이라면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친히 담당하셨다.
②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받으셨다.
③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고통은 십자가를 앞둔 참된 인간적 고뇌를 보여준다.
④ 히브리서 4:15은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라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이라고 말씀한다.
⑤ 그러므로 마태복음 5:4의 위로는 인간의 자기 위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로로 이해해야 한다.

2) 애통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통로가 된다
①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② 그러나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알아갈수록 자신의 죄와 부족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③ 사도 바울도 사역의 마지막 시점에 자신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다(디모데전서 1:15).
④ 이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갔기 때문에 나온 고백으로 볼 수 있다.
⑤ 참된 애통은 자기혐오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회개다.


7 - 다윗에게 나타난 애통과 회개

1) 다윗은 죄를 짓고도 즉시 회개하지 않았다
① 다윗은 밧세바와 범죄하고 우리아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② 그러나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다.
③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 다윗의 죄를 드러내셨다.
④ 사무엘하 12:7에서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라고 말한다.
⑤ 그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고백한다(사무엘하 12:13).
⑥ 시편 51편은 그 회개가 얼마나 깊은 애통을 동반했는지를 보여준다.

2) 회개는 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가 시작되지 않는다.
② 하나님은 죄를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사람을 찾으신다.
③ 잠언 28:13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한다.
④ 애통은 죄에 눌려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⑤ 그러므로 애통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8 -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1) 자기 의를 자랑하는 기도
①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자랑한다.
② 금식과 십일조를 행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내세운다. 여기서 십일조는 말라기서에 기록된 십일조의 본질에서 벗어나있다.
③ 그의 기도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애통이 없다.
④ 신앙생활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의를 확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2) 애통하는 세리의 기도
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한다.
②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다.
③ 예수님은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에 유하시기 위하여 들어가셨다.
④ 이것이 마태복음 5:4에서 말하는 애통의 중요한 방향이다.
⑤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다.


9 - 애통하는 자가 받는 위로

1) 위로는 인간의 자기만족이 아니다
① 세상의 위로는 상황이 좋아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②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위로는 단순한 심리적 안정이 아니다.
③ 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용서와 생명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위로다.
④ 로마서 5:1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씀한다.
⑤ 참된 위로는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된다.

2) 애통 → 회개 → 위로 → 생명
①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②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한다.
③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회개한다.
④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위로를 경험한다.
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⑥ 결국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10 - 오늘의 신앙이 회복해야 할 애통

1) 인간의 지식이 말씀을 대신할 수 없다
①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과 책과 심리학과 각종 자기계발을 통해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다.
② 이런 지식은 삶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③ 디모데후서 4:3~4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욕심에 따라 스승을 많이 두며 진리에서 귀를 돌이킬 것을 경고한다.
④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일수록 인간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해야 한다.

2) 신앙생활 자체가 자기 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① 오래 교회에 다닌 것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② 성경을 많이 읽은 것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③ 많은 봉사와 헌금과 직분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④ 구원의 근거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⑤ 신앙생활은 자기 의를 쌓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다.


11 - 결론: 애통하는 자에게 예수님의 위로가 임한다

1) 애통은 회개의 문이다
① 예수님의 첫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마태복음 4:17).
② 애통하는 마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한다.
③ 자신의 의를 내려놓을 때 예수님의 의를 바라보게 된다.
④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선명해진다.

2) 예수님이 진정한 위로가 되신다
①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②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
③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셨다.
④ 그러므로 마태복음 5:4의 “위로”는 결국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의 위로로 연결된다.
⑤ 요한계시록 21:4은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한다.
⑥ 지금의 애통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완전한 위로에 이르게 된다.

3) 오늘의 결단
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는가.
② 나는 나의 의와 신앙 경력을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③ 나는 사람의 위로보다 예수님의 위로를 구하고 있는가.
④ 나는 죄를 깨달았을 때 숨기지 않고 회개하고 있는가.
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구원의 유일한 근거임을 믿고 있는가.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 애통이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위로를 받게 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애통을 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예수님의 위로가 임하고, 그 위로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생명의 길로 이어진다.

※ 역사적 배경에서 한 가지 중요한 보정:  당시 빌라도의 정탐꾼들이 있었다”는 내용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고, 성경이 직접 기록하지도 않았지만.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봤을때 충분한 추론의 여지가 있다고 할수 있다. 

 또한 사순절을 단순히 “천주교의 핍박신학에서 시작된 제도”라고 보는 것도 설교의 적용 및 해석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할 수 있다. 마태복음 자체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무리를 가르치신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이 함축된 내용임을 감안한다면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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